[글로벌 기술 산책 6편] 자재는 왜 따로 인증하는가 — 적합 자재와 열교 없는 설계
지난 네 편에서 1차에너지를 다루었습니다. 이번 편부터는 다시 집 자체로 돌아옵니다. 1편에서 패시브하우스의 수단으로 고성능 창호, 고단열 외피, 열교 없는 설계, 열회수 환기장치를 꼽았고, 자재 …
지난 네 편에서 1차에너지를 다루었습니다. 이번 편부터는 다시 집 자체로 돌아옵니다.
1편에서 패시브하우스의 수단으로 고성능 창호, 고단열 외피, 열교 없는 설계, 열회수 환기장치를 꼽았고, 자재 인증 제도가 마련된 배경을 한 줄로 적었습니다. 이번 편은 그 두 가지를 조금 더 들여다봅니다. 연구소가 자재를 왜 따로 인증하는지, 그리고 '열교 없는 설계'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입니다.
1. 아껴 쓰는 집이 아닙니다
패시피디아는 이 항목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패시브하우스가 일반 신축 건물보다 에너지를 크게 줄이는 것은 거주자가 아껴 쓰며 살아서가 아니라, 건물과 설비의 효율이 높아서라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상세를 꼼꼼히 계획하는 일과 함께, 효율이 특별히 높은 자재가 필요합니다. 원문은 그 수준을 흔히 쓰는 제품보다 대체로 두 배에서 네 배라고 적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자재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제품의 특성값을 분명하게 알아내기 어렵고, 그 값이 오래 유지되는지는 더욱 알기 어렵습니다. 초기 패시브하우스 프로젝트들에서 이 문제를 겪은 것이 계기가 되어, 연구소는 실무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고 분명하게 판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패시브하우스에 적합한 제품이 충족해야 하는 기준입니다.
2. 기준은 두 갈래입니다
기준은 두 범주 위에 서 있습니다.
ㆍ거주자의 건강과 쾌적 — 쾌적 기준
ㆍ실제로 쓰일 때의 에너지 수지 — 에너지 기준
연구소가 내세우는 원칙은 요구 수준을 물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 위에 두는 것입니다. 원문이 드는 예가 있습니다. 사람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받는 복사 온도의 차이가 5 K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국제 표준 ISO 7730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풀어 쓰면 이렇습니다. 창가에 앉은 사람의 한쪽은 차가운 창을 마주하고 반대쪽은 따뜻한 실내를 마주합니다. 두 쪽에서 받는 복사의 온도 차이가 크면 공기 온도가 충분해도 한쪽이 시리게 느껴집니다. 그 차이를 5 K 이내로 제한할 수 있는 창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재의 기준이 제품의 사정이 아니라 사람의 몸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이런 근거만으로 기준을 세우기에 부족한 곳에는 효율 등급을 두었습니다. 패시브하우스 창호의 등급이 그 예입니다. 3편에서 창틀을 phB에서 phA로 바꾸었다는 대목이 바로 이 등급입니다.
기준은 되도록 기후와 관계없이 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기후와 무관한 기준은 사용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기후대를 나누어 그에 맞는 기준도 따로 정해 두었습니다.
3. 숫자는 지어진 집에서의 값이어야 합니다
모든 기준은 측정할 수 있는 양으로 표현되고, 확립된 방법으로 시험합니다. 인증서에는 에너지 수지를 계산하는 데 필요한 특성값과 쾌적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값이 함께 적힙니다. PHPP에 그대로 넣는 값들입니다.
여기서 원문이 강조하는 것이 둘 있습니다.
첫째, 특성값은 실제로 지어진 패시브하우스에서 그 자재가 보이는 성능을 대표하도록 정의합니다. 환기장치라면 장치 안에서 잰 효율이 아니라, 건물 외피를 경계로 드나드는 공기의 열을 따져 효율을 정하는 식입니다.
둘째, 특성값은 그 제품만의 값입니다. 그래서 건물에 넣을 때 지켜야 할 조건을 함께 밝힙니다. 창이라면 어떻게 설치했을 때의 값인지가 그것입니다. 이 조건은 인위적인 시험실 조건이 아니라 현실적인 시공을 기준으로 정합니다.
성적서에 적힌 숫자와 지어진 집에서 나오는 숫자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설계에 필요한 것은 지어진 집의 숫자라는 것이 이 대목의 요지입니다.
4. 왜 따로 인증하는가
패시브하우스에는 품질이 높은 자재가 필요합니다. 원문이 꼽는 것은 단열 성능이 매우 높은 창틀, 고효율 환기장치, 열교 없는 접합 상세, 햇빛을 실내로 들이는 유리, 컴팩트 히트펌프 유닛 같은 것들입니다.
설계자에게는 이 자재들의 효율을 평가하고 계산에 넣을 특성값을 정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원문은 그 이유를 꽤 직설적으로 적습니다. 국가나 지역의 표준에 적힌 특성값은 현실과 맞지 않거나 충분히 정밀하지 않은 경우가 매우 많고, 제조사가 주는 정보만으로는 믿을 만한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구소가 독립된 기관으로서 제품을 시험하고 인증합니다. '패시브하우스 적합 자재' 인증을 받은 제품은 같은 기준으로 시험된 것이어서 특성값을 서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설계자의 일을 덜어 주고, 완성된 집이 문제없이 작동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것이 원문의 설명입니다.
5. 열교 없는 설계 — 정의부터
'열교 없는 설계'는 자주 쓰는 말이지만, 정의를 물으면 답이 엇갈립니다. 패시피디아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열교를 고려한 전열 손실이, 외부 치수로 잡은 표면적과 일반 부위의 열관류율만으로 계산한 결과보다 크지 않으면 그 외피를 열교가 없는 것으로 본다.
식으로 적으면 이렇습니다. 외피 전체의 전열 손실은 세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일반 부위의 손실 : U × A 의 합
선형 열교의 몫 : Ψ × l 의 합
점형 열교의 몫 : χ 의 합
U는 열관류율, A는 면적입니다. Ψ(프사이)는 선형 열교의 손실계수이고 l은 그 길이입니다. χ(카이)는 점형 열교의 손실계수입니다. 점형 열교의 몫은 대체로 미미해서 원문도 자세히 다루지 않습니다.
열교 없는 설계는 뒤의 두 몫을 더한 것이 0보다 크지 않은 상태로 정의합니다.
Ψ × l 의 합 + χ 의 합 ≤ 0
독일의 에너지절약규정에서 쓰는 열교 보정 가산값(ΔU_WB)이 0 이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열교가 0 이하라는 것의 뜻
이 정의에서 눈여겨볼 것은 기준이 되는 계산이 외부 치수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열교가 없다는 말은 열이 더 새는 자리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외부 치수로 면적을 잡아 계산한 일반 부위의 손실이, 접합부에서 더 새는 양까지 이미 덮고 있다는 뜻입니다. 접합부를 그 범위 안에 들도록 설계한 것이 열교 없는 설계입니다.
이 조건을 충족하면 계산에서 열교의 효과를 생략할 수 있습니다. 계산이 크게 단순해집니다. 패시브하우스에서는 열교로 인한 손실이 따로 계산에 넣지 않아도 될 만큼 줄어 있다는 것이 원문의 정리입니다.
반복되는 구조는 일반 부위에 넣습니다
원문이 괄호 안에 덧붙인 권고가 하나 있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되풀이되는 구조, 이를테면 주기적으로 놓이는 스터드는 그 영향을 일반 부위의 열관류율 안에 넣어 계산하는 편이 좋다는 것입니다.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열교를 하나하나 따로 세지 않고, 그 부위의 평균적인 성능으로 다루라는 뜻입니다.
사례 — 바닥 슬래브 위의 외벽
원문은 단열된 바닥 슬래브 위에 외벽이 올라서는 접합부를 예로 듭니다. 벽의 첫 단에 어떤 받침 블록을 쓰느냐에 따라 이 접합부의 열교 계수가 달라지며, 그 관계를 계산해 보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같은 자리라도 자재 하나의 선택으로 열교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입니다.
6. 우리 상황에서 달리 읽어야 할 대목
성적서의 값과 설치된 창의 값
표준에 적힌 특성값이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원문의 지적은 독일의 사정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나 같은 질문은 우리에게도 해당합니다. 그 숫자가 어떤 조건에서 나온 값인가 하는 것입니다.
창호의 열관류율 성적서는 정해진 크기의 시험체를 시험실에서 잰 값입니다. 벽에 설치하면서 생기는 열교는 그 값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연구소가 창의 특성값에 설치 조건을 함께 다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적서의 숫자가 좋은 창을 골랐더라도 설치 상세가 따라오지 않으면 지어진 집의 숫자는 달라집니다.
계산에서만 열교를 0으로 두면
열교 없는 설계는 계산을 편하게 하려는 약속이 아닙니다. 접합부를 실제로 그렇게 설계하고 시공했다는 것을 전제로, 그 결과 계산이 단순해지는 것입니다. 순서가 뒤집히면 숫자와 집이 어긋납니다. 상세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계산에서만 열교를 빼면, 그 차이는 난방 에너지와 표면 결로로 돌아옵니다.
목구조와 스터드
되풀이되는 구조를 일반 부위의 열관류율에 넣으라는 권고는 목구조에 그대로 해당합니다. 단열재 사이사이에 놓인 스터드와 장선은 단열재보다 열을 잘 전합니다. 단열재만의 값으로 벽의 성능을 말하면 실제보다 좋게 나옵니다. 목재가 차지하는 비율을 반영한 값으로 계산해야 하고, 그렇게 한 뒤에야 나머지 접합부를 두고 열교가 있다 없다를 따질 수 있습니다.
참고한 자료
이 글은 패시피디아(Passipedia)의 다음 항목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ㆍPassive House suitable components
ㆍWhat defines thermal bridge free design
원문 : https://passipedia.org
이 글이 만들어진 과정
이 연재는 독일 패시브하우스연구소가 운영하는 기술 자료집 패시피디아를 교재로 삼습니다. 항목을 순서대로 짚어가며 다룰 주제를 나누고, 각 주제가 우리 기후와 국내 기준에서 어떻게 달리 읽혀야 하는지를 함께 정리합니다.
원문을 요약하고 얼개를 잡는 초벌 작업에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만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도록 문장은 새로 쓰게 하였고, 마지막으로 제가 내용을 확인하고 다듬은 뒤 올립니다. 국내 기준과 수치는 따로 확인하여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