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 산책 8편] EnerPHit — 기존 건물을 고칠 때의 기준, 그리고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 온도
1편에서 EnerPHit을 한 문단으로 소개했고, 지난 편에서는 다음에 다루겠다고 미뤄 두었습니다. 이번 편이 그 차례입니다. 이미 지어진 건물을 패시브하우스 자재로 고치는 일입니다. 원문은 둘입니…
1편에서 EnerPHit을 한 문단으로 소개했고, 지난 편에서는 다음에 다루겠다고 미뤄 두었습니다. 이번 편이 그 차례입니다. 이미 지어진 건물을 패시브하우스 자재로 고치는 일입니다.
원문은 둘입니다. EnerPHit을 소개하는 짧은 항목과, 개보수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를 다룬 심화 항목입니다. 뒤의 항목에 실무에서 그대로 쓸 수 있는 숫자가 하나 나옵니다.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 표면온도입니다.
1. 왜 기준을 따로 두는가
기존 건물은 자금이 충분하더라도 신축과 같은 패시브하우스 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서 있는 구조와 대지의 조건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구소는 기존 건물을 위한 인증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정식 이름은 '패시브하우스 자재를 쓴 품질 인증 에너지 개보수'이고, 줄여서 EnerPHit이라고 부릅니다.
원문은 기존 건물에서도 75%에서 90%에 이르는 에너지 절감이 가능하다고 적고, 효과가 확인된 수단을 일곱 가지로 듭니다.
ㆍ단열 개선 — 원칙은 "어차피 해야 한다면 제대로 한다"입니다
ㆍ열교 줄이기
ㆍ기밀 성능을 크게 높이기
ㆍ품질이 아주 좋은 창호 — 기회가 있을 때 패시브하우스 적합 창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적고 있습니다
ㆍ고효율 열회수 환기
ㆍ효율적인 열 생산
ㆍ재생에너지의 이용
목록을 보면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원문도 바로 그 점을 짚습니다. 신축에서 성공한 수단과 정확히 같다는 것입니다. 기존 건물이라고 다른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같은 기술을 주어진 조건 안에서 적용하는 일입니다.
2. 지금의 기준
기준에 이르렀는지는 두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로 입증합니다.
ㆍ에너지요구량 방식 — 건물 전체의 난방 에너지요구량이 한계값 아래임을 보입니다
ㆍ부재 방식 — 벽, 지붕, 창 같은 부위 하나하나가 정해진 성능을 충족함을 보입니다
향을 바꿀 수 없는 건물처럼, 가장 좋은 자재를 써도 에너지요구량의 한계를 맞추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 뒤의 방식을 함께 두었습니다.
한랭 온대 기후를 기준으로 신축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ㆍ난방 에너지요구량 : EnerPHit 25 kWh/(㎡·년) 이하 — 신축은 15 이하
ㆍ기밀도(n50) : EnerPHit 1.0회/h 이하 — 신축은 0.6회/h 이하
에너지 쪽은 조금 더 허용하지만 쾌적 기준은 신축과 같습니다.
한 번에 다 고치지 못하는 경우를 위한 길도 있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단계적으로 고칠 때는 마지막 단계까지의 전체 계획(EnerPHit 개보수 계획)을 먼저 세웁니다. 그 계획을 세우고 첫 단계에서 에너지를 20% 이상 절감했다면 사전인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계획대로 끝까지 가면 목표 기준에 이른다는 것을 미리 확인받는 것입니다.
3. 첫째 목표 — 열손실을 줄입니다
심화 항목은 개보수의 주된 목표를 둘로 정리합니다. 첫째는 열손실을 줄이는 것입니다.
외피 전체의 전열 손실은 6편에서 본 식 그대로입니다.
일반 부위의 손실 : U × A 의 합
선형 열교의 몫 : Ψ × l 의 합
단열을 보강하는 일은 앞의 항, 곧 부위의 열관류율 U를 낮추는 일입니다. 접합부를 손보는 일은 뒤의 항, 곧 열교의 손실계수 Ψ를 낮추는 일입니다. 개보수에서는 둘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벽의 단열만 좋아지고 접합부가 그대로 남으면, 전체 손실에서 열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입니다.
4. 둘째 목표 — 곰팡이를 막습니다
기존 건물을 고치는 일의 초점은 이미 생긴 손상을 바로잡고 앞으로 생길 손상을 막는 데 있습니다. 원문은 곰팡이를 건물 자체를 상하게 하는 심각한 위험으로 봅니다.
곰팡이를 일으키는 생물은 여러 종류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포자가 싹트고 균사가 자라려면 수분이 충분해야 합니다. 완전히 마른 바탕에서는 곰팡이 피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면 습기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결로만 피하면 된다는 것은 옛 기준입니다
원문은 옛 기준과 새 기준을 나란히 적습니다.
ㆍ옛 기준 : 결로를 피한다
ㆍ새 기준 : 재료의 모세관에 머금어진 물만으로도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지 않아도, 재료의 가는 틈에 머금어진 수분만으로 곰팡이가 자란다는 뜻입니다. 근거는 프라운호퍼 건축물리연구소의 제들바우어가 2002년에 발표한 연구입니다. 포자의 형성과 균사의 성장은 세 가지에 달려 있습니다. 바탕이 되는 재료, 수분활성도, 그리고 온도입니다. 수분활성도는 그 재료와 습기 평형을 이룬 공기의 상대습도로 잽니다.
원문은 여기서 안전한 쪽으로 두 가지를 단순하게 잡습니다.
첫째, 건축에 흔히 쓰이는 바탕은 곰팡이가 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것으로 봅니다. 벽지와 석고보드가 그렇고, 때가 묻은 미장면이나 무기질 표면도 그렇습니다. 순수한 무기질 표면이라도 수십 년 동안 위험이 낮은 상태로 깨끗하게 유지하기는 어렵고, 보통의 청소가 오히려 유기물을 쌓는 데 한몫하기도 한다는 것이 원문의 설명입니다.
둘째, 온도가 낮으면 포자와 균사가 덜 자라지만 실내 표면의 온도 범위에서는 그 차이가 크지 않으므로, 조건을 하나로 정리합니다.
수분활성도가 80%를 넘으면 포자가 싹트고 자랄 수 있다
이 수분활성도는 그 부위 표면의 상대습도와 평형을 이룹니다. 표면의 상대습도가 80%를 넘지 않게 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12.6도라는 숫자
표면의 상대습도는 표면이 차가울수록 올라갑니다. 실내 공기가 차가운 표면에 닿아 식으면 품을 수 있는 수증기의 양이 줄기 때문입니다. 원문은 다음 조건을 표준으로 놓고 계산합니다.
ㆍ실내 공기의 상대습도 50% — 환기가 되고 있다는 전제입니다
ㆍ실내 공기의 온도 20 °C
ㆍ외기 온도 −5 °C
이 조건에서 기억해 둘 온도가 둘 나옵니다.
ㆍ9.3 °C — 표면의 상대습도가 100%에 이르는 온도. 물을 빨아들이지 않는 표면에 결로가 생기는 한계입니다
ㆍ12.6 °C — 표면의 상대습도가 80%에 이르는 온도. 물을 머금는 표면에 곰팡이가 생기지 않으려면 지켜야 하는 최저 표면온도입니다
결로를 기준으로 삼으면 9.3 °C만 넘기면 됩니다. 곰팡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12.6 °C를 넘겨야 합니다. 3도 남짓한 차이지만, 창 주위나 모서리처럼 온도가 내려가는 자리에서는 이 차이가 하자가 생기느냐 아니냐를 가릅니다. 원문은 건물 손상을 막으려면 뒤의 기준이 결정적이라고 분명히 적습니다.
결로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가지 않습니다
기준이 엄격해진 대신 얻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표면에서 이 조건을 지키면 다른 어디에도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원문이 바로잡는 통념이 하나 있습니다. 물은 어디엔가 맺혀야 하니, 창유리에 맺히지 않으면 열교나 다른 표면에 맺힌다는 것입니다. 일부 전문가도 그렇게 믿는다고 원문은 적고, 이 주장은 틀렸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통상의 실내 조건에서 표면온도가 약 12.6 °C를 넘으면 곰팡이가 자라기에 알맞은 습도 자체가 생기지 않습니다. 모든 표면을 그보다 따뜻하게 유지하면 표면은 마른 채로 남습니다. 배관이 터지거나 빗물이 드는 것 같은 다른 수분의 원인이 없는 한 그렇습니다.
5. 흔한 편견 둘
원문은 이 대목에서 어조가 꽤 단호해집니다.
하나는 "단열 개보수가 하자를 부른다"는 말입니다. 원문은 이런 말이 대중 잡지에 실리거나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도 문제지만, 자격을 갖춘 건설 전문가가 계속 편드는 것은 무책임에 가깝다고 적습니다. 제대로 계획하고 시공한 단열은 손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원문의 결론입니다.
다른 하나는 "단열이 두꺼워질수록 열교가 더 문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기술 문헌에도 나옵니다. 원문은 한 문헌이 외단열 시스템으로 실내 표면온도가 곰팡이를 배제할 만큼 올라간 사례를 두고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 것을 예로 듭니다. 그렇게 쓰면 단열을 하는 쪽이 문제를 키우는 것처럼 읽힙니다. 원문의 입장은 반대입니다. 사례에서 드러난 관계는 일반화할 수 있으며, 제대로 설치한 외단열은 실내 쪽 표면온도를 충분히 높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6. 우리 상황에서 달리 읽어야 할 대목
실내 습도가 50%를 넘으면 기준 온도도 올라갑니다
12.6 °C는 실내 상대습도 50%를 전제로 한 값입니다. 원문이 이 조건 옆에 '환기'라고 적어 둔 이유가 있습니다. 환기가 부족하면 겨울 실내의 습도는 이보다 쉽게 올라갑니다.
같은 식에 실내 상대습도 60%를 넣어 계산해 보면 표면의 상대습도가 80%에 이르는 온도는 약 15.4 °C가 됩니다. 실내가 습할수록 표면을 더 따뜻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곰팡이를 막는 일은 단열과 열교만의 문제가 아니고, 환기로 실내 습도를 관리하는 일과 한 묶음입니다. 1절의 일곱 가지 수단에 열회수 환기가 들어 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외기가 더 차가우면
표준 조건의 외기 온도는 −5 °C입니다. 외기가 이보다 낮으면 같은 벽, 같은 접합부라도 실내 쪽 표면온도는 더 내려갑니다. 한겨울 기온이 −5 °C 아래로 내려가는 지역에서는 그만큼 여유를 두고 접합부를 검토해야 합니다.
내단열로 고칠 때
원문이 예로 든 것은 외단열입니다. 바깥에서 건물을 감싸면 구조체 전체가 따뜻해져 실내 쪽 표면온도가 고르게 올라갑니다.
기존 건물은 사정상 안쪽에서 단열을 보강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단열에서는 슬래브와 벽이 만나는 자리처럼 단열이 끊기는 접합부가 남습니다. 이런 자리의 표면온도를 12.6 °C 기준으로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벽 가운데의 열관류율이 좋아진 것만으로는 그 자리가 안전한지 알 수 없습니다.
여름에는 방향이 뒤집힙니다
원문의 조건은 겨울입니다. 우리에게는 여름에 방향이 뒤집힌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덥고 습한 바깥 공기가 냉방으로 차가워진 면에 닿는 경우입니다. 이 문제는 여름철 과열과 습기를 다루는 편에서 따로 보겠습니다.
참고한 자료
이 글은 패시피디아(Passipedia)의 다음 항목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ㆍEnerPHit — the Passive House Certificate for old buildings
ㆍMain objectives of refurbishments with Passive House components
2절의 한계값(난방 에너지요구량 25 kWh/(㎡·년), 기밀도 1.0회/h)은 한랭 온대 기후에 적용되는 값이며, 패시브하우스연구소의 「건물 인증 기준(Criteria for Buildings)」 10c판(2023년 1월 개정)으로 확인했습니다. 난방 에너지요구량의 기준은 기후대에 따라 다릅니다. 사전인증의 조건은 패시브하우스연구소 공식 자료로 확인했습니다(passivehouse.com, 2026년 10월 기준). 6절의 15.4 °C는 원문의 식에 실내 상대습도 60%를 넣어 제가 계산한 값입니다. 원문 : https://passipedia.org · https://passivehouse.com
이 글이 만들어진 과정
이 연재는 독일 패시브하우스연구소가 운영하는 기술 자료집 패시피디아를 교재로 삼습니다. 항목을 순서대로 짚어가며 다룰 주제를 나누고, 각 주제가 우리 기후와 국내 기준에서 어떻게 달리 읽혀야 하는지를 함께 정리합니다.
원문을 요약하고 얼개를 잡는 초벌 작업에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만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도록 문장은 새로 쓰게 하였고, 마지막으로 제가 내용을 확인하고 다듬은 뒤 올립니다. 국내 기준과 수치는 따로 확인하여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