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 산책 5편] 작은 집이 많이 모이면 — 프로젝트별 1차에너지 기준
지금까지 60, 45, 30이라는 고정된 기준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준이 모든 건물에 공평하지는 않습니다. 작은 세대가 빽빽하게 모인 주거는 잘 지어도 이 기준을 넘기 쉽습니다. 설계가 부…
지금까지 60, 45, 30이라는 고정된 기준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준이 모든 건물에 공평하지는 않습니다.
작은 세대가 빽빽하게 모인 주거는 잘 지어도 이 기준을 넘기 쉽습니다. 설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많아서입니다. 연구소는 이 문제를 인정하고, 프로젝트마다 기준을 다시 계산하는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도시의 공동주택과 도시형생활주택, 오피스텔에 그대로 해당하는 이야기라 따로 한 편으로 정리합니다.
1. 왜 작은 세대가 불리한가
환기와 급탕, 가전에 드는 에너지는 사람 수에 비례해서 늘어납니다. 면적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평가는 단위면적당 값으로 합니다. 그래서 세대가 작을수록 단위면적당 수요가 올라갑니다. 두 사람이 쓰는 급탕이 같아도, 60 ㎡ 세대라면 60으로 나누고 120 ㎡ 세대라면 120으로 나누므로 작은 세대의 값이 두 배가 됩니다. 같은 성능의 환기장치와 같은 효율의 냉장고를 쓰더라도 그렇습니다. 원문은 세대 크기 다섯 가지를 같은 조건으로 놓고 비교해 이 차이를 보여 줍니다. 작은 세대일수록 단위면적당 최종에너지 수요가 높게 나옵니다.
공동주택에는 단독주택에 없는 항목도 붙습니다. 펌프와 승강기 같은 설비, 그리고 복도와 부대시설, 창고 같은 공용부입니다.
밀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Classic 수준에서 흔히 쓰는 자재와 설비로는 60 kWh/(㎡·년) 아래로 내려가기 어렵습니다. 더 좋은 창호와 더 좋은 설비를 넣어야 겨우 기준을 충족합니다. 밀도가 높다는 이유 하나로 더 높은 성능을 요구받는 셈입니다.
밀도가 높은 주거는 1인당 차지하는 땅과 자원이 적습니다. 그 점을 생각하면 평가에서 불리해지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2. 예외는 완화가 아닙니다
인증 기준에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특수한 용도에 대해 예외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이 전부터 있었습니다. 다만 조건이 붙습니다. 중요한 기기와 설비 전부에 대해 전기를 효율적으로 쓰고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그 예외가 건마다 연구소의 개별 심사로 정해졌다는 점입니다. 설계자는 사업 초기에 목표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표준화된 산정 방식을 만들었습니다. 밴쿠버의 제로배출건물 기구와 북미 실무자 기술위원회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새 기준은 기준을 느슨하게 풀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용도마다 패시브하우스가 마땅히 도달해야 할 성능을 목표로 정하고, 그 목표들을 더해서 만든 기준입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세대 면적이 충분히 커지면 이 기준은 원래 기준과 같거나 오히려 더 엄격해집니다.
3. 기준을 어떻게 다시 정하는가 — 용도별 목표를 더합니다
각 용도마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최종에너지로 환산한 뒤 해당 PER 계수(또는 PE 계수)를 곱해 모두 더합니다. 계수는 에너지원과 용도, 위치를 함께 보고 고릅니다.
목표를 정하는 방식은 셋으로 나뉩니다.
ㆍ난방·냉방·제습 : 기존 인증 기준값을 그대로 목표로 씁니다. 이 항목은 바꾸지 않습니다.
ㆍ환기·급탕·가전 : 1인당 값으로 정합니다. 그래서 밀도에 따라 저절로 조정됩니다.
ㆍ보조전력·공용부·승강기 : 프로젝트의 조건에 따라 조정합니다. 기준면적, 세대 수, 승강기와 공용부가 있는지를 봅니다.
환기를 예로 들면
먼저 필요한 환기량을 정합니다. 패시브하우스의 권장값인 1인당 30 ㎥/h, 욕실과 주방 같은 배기 구역의 요구량, 그리고 최소 환기횟수 0.3회/h 가운데 그 건물에 맞는 값을 씁니다.
다음으로 환기장치가 쓰는 전력의 상한이 있습니다. 패시브하우스 자재 인증 기준은 공기 1 ㎥를 보내는 데 0.45 Wh 이하를 요구합니다.
이 둘을 곱하면 그 건물의 환기 최종에너지 상한이 나옵니다. 네 사람이 사는 세대라면 1인당 30 ㎥/h로 시간당 120 ㎥이고, 여기에 0.45 Wh/㎥를 곱하면 환기장치가 쓸 수 있는 전력은 시간당 54 Wh입니다. 이 값에 환기에 해당하는 PER 계수를 곱하면 환기의 PER 목표가 됩니다.
급탕
패시브하우스의 고정값을 씁니다. 1인당 하루 25 L, 60 °C 기준입니다. 여기에 재실 인원을 곱하면 실제로 쓰는 더운 물에 드는 열이 나옵니다.
여기에 배관 손실의 상한을 둡니다. 쓰는 열과 같은 양(100%)까지입니다. 단, 열원이 충분히 효율적일 때에 한합니다. 연간성능계수(SPF, 1년 동안 전기 1로 얻는 열의 양)가 2 이상이어야 합니다. 열원의 효율이 그보다 낮으면 배관 손실을 그만큼 더 줄여야 합니다.
쓰는 양만큼을 배관에서 잃어도 된다는 뜻이니 너그러운 상한으로 보이지만, 3편의 어린이집 사례에서 손실이 쓰는 양을 넘었던 것을 떠올리시면 느슨한 기준이 아닙니다.
4. 실제 프로젝트로 맞춰 보았습니다
1차 검증 — 여섯 곳
기후대가 다른 여섯 프로젝트로 확인했습니다. 공동주택 다섯 곳과 단독주택 한 곳입니다. 단독주택은 PHPP의 기본 예제를 썼습니다. 기기와 설비의 효율 수준을 달리한 여러 경우를 함께 돌렸습니다.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세대가 작은 프로젝트는 재생에너지 생산으로 보완하지 않으면 60을 맞추기 어려웠습니다. 단독주택을 뺀 나머지는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기기를 썼을 때에야 기준을 충족했습니다. 세대가 가장 작은 경우에는 최고 수준의 기기에 고효율 히트펌프까지 함께 써야 했습니다.
조정된 기준은 원래 기준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패시브하우스에 적합한 기기' 수준으로 지었을 때의 값보다는 아래에 있습니다. 예외를 받으려면 평균적인 패시브하우스보다 나은 기기를 쓰거나, 급탕 배관 손실 같은 부분을 더 줄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2차 검증 — 스물여덟 곳
북극권을 뺀 모든 패시브하우스 기후대에서 주거 프로젝트 28곳을 더 계산했습니다. 세대 크기와 세대 수가 다양하게 섞여 있습니다.
확인된 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ㆍ한 곳을 뺀 전부가 조정된 PER 기준이나 조정된 PE 기준으로 인증이 가능했습니다. 되지 않은 한 곳은 승강기가 매우 비효율적이었고 직접 전기난방을 쓰고 있었습니다. 둘 가운데 하나만 바꾸어도 기준을 충족합니다.
ㆍ세대 면적이 충분히 커지면 계산된 목표가 원래 기준에 가깝거나 그 아래로 내려갑니다. PE 기준으로 약 75 ㎡, PER 기준으로 약 90 ㎡가 그 분기점입니다. 예외가 완화가 아니라는 말의 뜻이 여기서 확인됩니다.
ㆍ조정된 PER 기준을 넘은 프로젝트들은 급탕이나 난방에 보일러를 쓰고 있었습니다. 재생에너지 공급 체계에서 화석연료 해법을 권하지 않는다는 점이 숫자에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런 프로젝트도 PER로 넘어가는 과도기 동안에는 PE 기준으로 인증받을 수 있습니다.
ㆍPER 수요가 PE 수요보다 높게 나온 프로젝트가 한 곳 있었습니다. 급탕과 난방의 열원으로 펠릿을 쓴 경우입니다. 두 개념의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사례입니다. 현재의 화석연료 기반 공급을 전제하는 PE로는 낮게 나오지만, 바이오매스가 예산을 넘으면 더 높은 계수를 적용하는 PER로는 높게 나옵니다.
ㆍ난방과 냉방을 이미 크게 줄여 놓은 건물에서는 나머지 용도의 비중이 커집니다. 분석에서 줄일 여지가 크다고 지목된 곳은 두 군데였습니다. 배관 손실을 제한해 줄이는 급탕, 그리고 더 효율이 좋은 제품으로 바꾸는 가전입니다. 둘 다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이미 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5. 등급과는 어떻게 맞물리는가
조정된 목표는 Classic의 목표가 됩니다. Plus는 거기서 15 kWh/(㎡·년)을 뺀 값, Premium은 30 kWh/(㎡·년)을 뺀 값입니다.
재생에너지 생산량 기준은 바뀌지 않습니다. Plus 60, Premium 120 그대로입니다. 요구량 쪽만 밀도에 따라 움직입니다.
6. 쓰는 방법과 적용 범위
PHPP 파일에 연결되는 별도의 도구로 계산합니다. 이 도구는 용도별 목표와 프로젝트의 실제 값을 나란히 보여 주어, 어느 용도에서 더 줄일 수 있는지를 짚어 줍니다.
적용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ㆍPHPP 9.6판 이상에서 쓸 수 있습니다. 2019년 9월에 시범 단계로 공개되었습니다.
ㆍ예외를 받으려면 공인 건물인증기관의 검토를 거쳐야 합니다.
ㆍ주거용에만 유효합니다. 판매시설이나 수영장처럼 다른 용도가 섞여 있으면 용도별 목표를 면적가중 평균해 합산합니다.
ㆍ시범 기간이 끝나면 PHPP에 통합될 예정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자료가 정리된 시점이 2020년입니다. 지금의 PHPP 판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시범 단계를 벗어났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확인되는 대로 이 연재에 보태겠습니다.
7. 우리 상황에서 달리 읽어야 할 대목
이 이야기가 가장 쓸모 있는 곳
우리 도시의 주거는 밀도가 높습니다.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텔, 소형 임대주택처럼 세대가 작고 사람이 많은 유형이 여기에 그대로 해당합니다.
이 자료의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관점입니다. 그런 건물이 1차에너지 기준을 넘는 것이 설계가 나빠서가 아니라 밀도 때문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경우에는 기준 쪽을 조정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우리 제도를 두고 이야기할 때도 참고할 만한 관점이라고 봅니다.
국내 평가에서도 같은 일이 생깁니다
국내 인증도 단위면적당 1차에너지 소요량으로 평가합니다. 따라서 밀도가 높은 주거에서 같은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밀도에 따른 보정이 국내 기준에 있는지는 해당 고시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실무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합니다. 설계 초기에 급탕과 가전, 공용부 전력을 먼저 점검해 두는 것입니다. 난방과 냉방을 아무리 줄여도 이쪽이 남아 있으면 숫자가 내려가지 않습니다.
줄일 곳은 같습니다
원문이 지목한 두 군데, 급탕 배관 손실과 가전 효율은 우리 건물에서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3편의 어린이집에서 나온 결론과도 같습니다. 우리 공동주택에서는 여기에 승강기와 공용부 조명도 함께 점검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냉방이 더해집니다
원문이 예시로 든 계산은 냉방 수요가 15 kWh/(㎡·년)인 지역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지금 기준에서 냉방·제습 목표는 15 kWh/(㎡·년)에 기후에 따른 가산값을 더하므로, 우리 여름에는 이 목표가 더 크게 잡힙니다.
밀도가 높은 데다 냉방까지 큰 조건이 겹치면 고정된 기준을 충족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집니다. 거꾸로 말하면, 용도별로 목표를 더하는 이 방식이 우리에게 특히 맞는 방식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참고한 자료
이 글은 패시피디아(Passipedia)의 다음 항목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ㆍRenewable primary energy demand in residential buildings with high energy intensity
ㆍProject-specific primary energy requirements for Passive House Certification
(Reyes Bernal · Bastian · Grove-Smith · Schnieders)
두 자료 모두 밴쿠버 제로배출건물 기구(ZEBx)와 함께 수행한 'Project-specific PER' 과제의 결과물입니다. 등급별 기준은 패시브하우스연구소의 「건물 인증 기준(Criteria for Buildings)」 10c판(2023년 1월 개정)으로 확인했습니다. 1절과 3절의 숫자 예는 제가 계산한 값입니다. 원문 : https://passipedia.org
이 글이 만들어진 과정
이 연재는 독일 패시브하우스연구소가 운영하는 기술 자료집 패시피디아를 교재로 삼습니다. 항목을 순서대로 짚어가며 다룰 주제를 나누고, 각 주제가 우리 기후와 국내 기준에서 어떻게 달리 읽혀야 하는지를 함께 정리합니다.
원문을 요약하고 얼개를 잡는 초벌 작업에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만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도록 문장은 새로 쓰게 하였고, 마지막으로 제가 내용을 확인하고 다듬은 뒤 올립니다. 국내 기준과 수치는 따로 확인하여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