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 산책 7편] 인증은 무엇을 보증하는가 — 건물, 사람, 그리고 넘겨받는 절차
지난 편에서 자재의 인증을 보았습니다. 인증에는 두 갈래가 더 있습니다. 지어진 건물에 주는 인증과, 설계하는 사람에게 주는 자격입니다. 이번 편은 그 둘을 정리하고, 품질 보증의 마지막 단계인 준…
지난 편에서 자재의 인증을 보았습니다. 인증에는 두 갈래가 더 있습니다. 지어진 건물에 주는 인증과, 설계하는 사람에게 주는 자격입니다.
이번 편은 그 둘을 정리하고, 품질 보증의 마지막 단계인 준공 인수를 함께 다룹니다. 다 지은 집을 어떤 절차로 넘겨받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패시피디아의 짧은 항목 셋을 묶었습니다.
1. 개념은 일부러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패시피디아는 인증 항목을 패시브하우스의 위치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건축에서 세계적으로 앞선 기준이며, 난방비 절감은 각국이 법으로 정한 신축 기준과 비교해 대개 80%를 넘는다는 것입니다. 난방 에너지요구량은 15 kWh/(㎡·년) 이하이고, 이 값은 난방·냉방되는 기준면적(TFA)으로 나눈 것입니다. 대략 거주면적에 해당하는 면적입니다.
이어서 원문은 이 기준이 열려 있다는 점을 차례로 적습니다.
ㆍ짓는 방법은 누구나 구할 수 있는 문헌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ㆍPHPP 같은 도구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ㆍ적합 자재는 중부유럽은 물론 다른 기후대를 위한 것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ㆍ기존 건물을 위한 기준도 따로 있습니다
계획하고 짓는 데 필요한 역량은 건축가와 전문 엔지니어가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다고 봅니다. 해 보면서 배우는 방식으로도 가능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목이 나옵니다. 패시브하우스라는 개념 자체는 의도적으로 보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건축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보를 자유롭게 얻을 수 있고, 자기 책임으로 패시브하우스를 지을 수 있습니다. 1편에서 본 "브랜드가 아니라 짓는 방식"이라는 말이 제도에서는 이렇게 나타납니다.
다만 연구소는 두 가지를 권고합니다.
ㆍ특히 첫 프로젝트에서는 경험 있는 패시브하우스 설계자나 컨설턴트에게 적어도 자문은 받을 것
ㆍ건물을 '품질 인증 패시브하우스'로 인증 신청할 것
누구나 지을 수 있게 열어 두되, 제대로 지었는지는 확인받으라는 구조입니다.
2. 인증의 갈래
원문은 인증을 다섯 갈래로 안내합니다.
ㆍ인증 패시브하우스 — 지어진 건물
ㆍEnerPHit — 기존 건물의 개보수
ㆍ패시브하우스 적합 자재
ㆍ인증 패시브하우스 설계자
ㆍ인증 패시브하우스 시공자
건물과 자재, 그리고 사람을 따로 본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자재는 지난 편에서 다루었고 EnerPHit은 다음 편에서 다룹니다. 여기서는 설계자 자격을 봅니다.
3. 사람에게 주는 자격
패시브하우스를 짓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원문은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전문성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건축가와 엔지니어, 시공 전문가는 이미 전문 지식과 실무 경험을 갖추고 있으므로, 더 필요한 지식은 크지 않은 노력으로 익힐 수 있다고 봅니다.
실무에서의 적용을 돕기 위해 연구소는 추가 자격을 만들었습니다. '인증 패시브하우스 설계자(Certified Passive House Designer)'와 '인증 패시브하우스 컨설턴트(Consultant)'입니다.
개념은 보호하지 않았지만 이 자격은 보호됩니다. 그리고 인증받은 그 사람에게만 적용됩니다. 사무소나 회사에 붙는 자격이 아닙니다.
자격을 얻는 길은 둘입니다.
ㆍ시험 규정에 따른 필기시험에 합격하는 것
ㆍ자신이 계획을 책임진 건물로 입증하는 것 — 연구소가 인증한 패시브하우스이거나 완료된 EnerPHit 개보수여야 합니다
얻은 자격을 유지하는 데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완공되어 인증받은 건물을 정기적으로 증빙해야 합니다. 시험으로 얻은 자격이라도 실제로 지어 인증받은 실적이 이어지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4. 준공 인수 — 넘겨받는 순간에 바뀌는 것
품질 보증의 마지막 단계는 준공 인수입니다. 원문은 독일의 법 규정을 들어 설명합니다. 조문은 독일의 것이지만, 인수라는 절차가 무엇을 바꾸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좋은 예입니다.
법적으로 인수는 그 공사가 정해진 기준을 충족했고 계약의 이행으로 받아들일 만하다고 인정하는 일입니다. 독일에서는 민법 제640조가 도급계약의 인수를 정하고 있습니다. 시공자는 계약대로 일을 마쳤다면 인수를 요구할 권리가 있고, 인수 검사에서 발견된 하자는 정해진 기간 안에 보수해야 합니다.
인수의 시점에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바뀝니다.
ㆍ공사 대금의 지급 기일이 됩니다
ㆍ하자에 대한 책임 기간이 이때부터 진행합니다
ㆍ건물이 우연히 훼손되거나 없어질 때의 위험 부담이 건축주에게 넘어갑니다(민법 제644조)
ㆍ하자가 있다는 것을 입증할 책임이 건축주에게 넘어갑니다
마지막 항목을 입증책임의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인수 전에는 시공자가 제대로 지었음을 보여야 하지만, 인수 뒤에는 건축주가 하자임을 보여야 합니다.
인수한 것으로 보는 경우
독일의 건설공사 도급규정(VOB/B)을 따르는 계약에서는 제12조가 민법의 규정을 일부 바꿉니다.
ㆍ건축주는 시공자가 요청한 날부터 12영업일 안에 인수해야 합니다
ㆍ정식 인수를 계약에 정하지 않았고 어느 쪽도 요구하지 않으면, 완공을 서면으로 알린 날부터 12영업일이 지나면 인수한 것으로 봅니다
ㆍ건축주가 건물의 전부나 일부를 쓰기 시작하면, 쓰기 시작한 날부터 6영업일이 지나면 인수한 것으로 봅니다
가만히 있어도, 또는 들어가 살기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인수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문은 정식 인수를 분명하게 권합니다. 건축주와 시공자가 함께, 가능하면 기술 전문가를 동반해 건물을 점검하고, 발견된 하자와 계약 위반 사항을 적은 인수 문서를 남기는 방식입니다.
쓰는 법도 함께 넘겨받습니다
인수와 별도로 건물과 설비를 정식으로 쓰기 시작하는 절차도 두라고 원문은 적습니다. 이때 넘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ㆍ최종 도면을 포함한 프로젝트 문서 전부
ㆍ운전 설명서
ㆍ사용 교육의 기록
교육에는 실제로 쓸 사람이나 시설을 맡을 사람이 참석해야 하고, 건물의 기술과 운전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합니다. 세입자에게는 분명하게 쓴 사용 설명서를 주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5. 우리 상황에서 달리 읽어야 할 대목
조문과 기간은 독일의 것입니다
4절에 적은 조문 번호와 12영업일, 6영업일 같은 기간은 독일의 규정입니다. 국내에서는 우리 법과 계약서의 조항을 따릅니다. 인수와 하자 책임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계약을 맺기 전에 계약서에서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래도 원칙은 그대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넘겨받는 순간에 책임의 방향이 바뀐다는 것, 그러므로 넘겨받기 전에 점검하고 그 결과를 문서로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넘겨받는 문서에는 측정 기록이 있어야 합니다
패시브하우스는 사양이 아니라 성능으로 정의되는 집입니다. 그러니 넘겨받을 때 확인할 문서에도 성능을 잰 기록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기밀 시험의 결과와 환기장치의 풍량을 맞춘 기록이 대표적입니다. 도면대로 지었다는 것만으로는 이 집이 기준을 충족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자격과 인증은 서로 다른 것을 보증합니다
설계자 자격은 사람에게 붙고, 건물 인증은 건물에 붙습니다. 자격을 가진 사람이 설계했다는 것이 그 건물의 성능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건물의 성능을 확인해 주는 것은 건물 인증입니다. 연구소가 개념은 열어 두면서도 건물마다 인증을 신청하라고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용 설명서
사는 사람에게 사용 설명서를 주라는 대목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패시브하우스에는 사는 사람이 챙겨야 할 일이 있습니다. 환기장치의 필터를 제때 가는 일이 그렇습니다. 집의 성능은 짓는 데서 끝나지 않고 쓰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참고한 자료
이 글은 패시피디아(Passipedia)의 다음 항목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ㆍCertification
ㆍCertified Passive House Designers
ㆍQuality Assurance — Final approval and initial use
4절의 법 조항(독일 민법 제640조·제644조, VOB/B 제12조)과 기간은 원문에 적힌 독일의 규정을 옮긴 것입니다. 원문 : https://passipedia.org
이 글이 만들어진 과정
이 연재는 독일 패시브하우스연구소가 운영하는 기술 자료집 패시피디아를 교재로 삼습니다. 항목을 순서대로 짚어가며 다룰 주제를 나누고, 각 주제가 우리 기후와 국내 기준에서 어떻게 달리 읽혀야 하는지를 함께 정리합니다.
원문을 요약하고 얼개를 잡는 초벌 작업에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만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도록 문장은 새로 쓰게 하였고, 마지막으로 제가 내용을 확인하고 다듬은 뒤 올립니다. 국내 기준과 수치는 따로 확인하여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