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패시브 칼럼 9편] 지구라는 거대한 온실 — 기후변화와 에너지 효율의 진짜 의미
오늘은 기후변화와 건물의 에너지 효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름에는 폭염이, 겨울에는 갑작스러운 한파가 이어지면서 냉방비와 난방비 걱정도 커졌습니다. 날씨가 극단적으로 변할수록 건물은 더 많은…
오늘은 기후변화와 건물의 에너지 효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름에는 폭염이, 겨울에는 갑작스러운 한파가 이어지면서 냉방비와 난방비 걱정도 커졌습니다. 날씨가 극단적으로 변할수록 건물은 더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교재에 따르면 건물은 전체 에너지의 약 48%를 쓰고(운영 40%, 건설 8%), 그래서 건축은 기후변화 문제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창호 둘레에 붙인 기밀 테이프 — 함양 운림리 중목구조 패시브하우스
1. 지구가 온실처럼 더워질 때
한여름 햇볕 아래 세워 둔 자동차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유리창을 통과한 햇빛이 시트와 내장재를 데우고, 데워진 열은 유리창을 다시 빠져나가지 못해 차 안이 금방 뜨거워집니다. 지구를 둘러싼 대기도 비슷하게 작용합니다.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나온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쌓이면, 지구는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온실처럼 됩니다.
문제는 지구의 기후가 작은 온도 변화에도 크게 흔들린다는 점입니다. 북극의 눈과 얼음은 햇빛을 반사하지만, 기온이 올라 얼음이 녹으면 어두운 바다가 드러나 열을 더 많이 흡수합니다. 바다가 열을 흡수하면 얼음은 더 빨리 녹습니다. 시베리아의 얼어 있던 땅이 녹으면서 그 안에 갇혀 있던 온실가스가 나오기도 합니다. 한번 균형이 무너지면 변화가 스스로 빨라지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이런 변화는 이제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일어날 확률이 낮더라도 결과가 치명적이라면 사람들은 그 위험을 피합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하나뿐인 지구를 걸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건물의 에너지를 줄여 환경에 주는 부담을 줄이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닙니다.
2. 태양광 패널보다 먼저 할 일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라고 하면 흔히 지붕의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발전기를 떠올립니다.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쉽고 빠르며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에너지 낭비 자체를 줄이는 것입니다.
높은 가지의 과일을 따려고 사다리를 오르기 전에, 손이 닿는 낮은 가지의 과일부터 따는 것이 순서입니다. 건축에서 낮은 가지의 과일은 건물의 기본 성능을 높이는 일입니다.
두꺼운 외투를 입어도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면 금방 추워집니다. 반대로 틈새를 잘 막으면 적은 열로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의 방향과 크기를 제대로 계획하고, 외벽을 빈틈없이 단열하고, 열이 빠져나가는 열교를 없애는 것만으로도 교재는 에너지 소비를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건물이 열을 쉽게 빼앗기지 않으면 큰 냉난방 설비도 필요 없어집니다.
3. 옛 건축의 지혜와 지속가능성
지속가능한 건축은 첨단 기술을 덧붙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기계 설비가 없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겨울 햇빛을 집 안 깊이 들이고 여름 햇빛은 피하도록 집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자연의 흐름에 맞춰 건물의 형태를 정하는 패시브 설계는 가장 오래 검증된 방법입니다.
건축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많지만, 핵심은 건물이 평생 쓰는 에너지를 최소로 줄이는 것입니다. 오래가는 재료로 건물의 수명을 늘리고, 꼼꼼한 시공으로 실내 환경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물을 아껴 쓰는 일도 결국 에너지를 아끼는 일과 이어집니다.
기초 위에 놓은 목재 토대와 하부 기밀재 — 청주 오창호수마을 패시브하우스 현장
건물은 한 번 지으면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서 환경에 영향을 줍니다. 감으로 지은 건물은 평생 에너지를 많이 쓰며 기후 위기를 키우지만, 잘 설계한 건물은 그 자체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 막연한 짐작이나 외관 디자인에만 기대서는 안 됩니다.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가 에너지 계산 프로그램 Energy#으로 건물의 배치와 방향, 단열과 기밀 성능을 미리 계산해 확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계산하고, 계산대로 지어 건물이 환경에 주는 영향을 줄이는 것, 그것이 '데이터로 증명하는 건축가의 책임'입니다.
이 글이 만들어진 과정
이 연재는 Norbert Lechner의 『Heating, Cooling, Lighting』을 교재로 삼습니다. 책의 챕터 순서에 따라 다룰 주제를 나누고, 각 주제를 패시브하우스의 설계·시공과 연결해 글의 얼개를 구성합니다. 그 얼개를 바탕으로 한 초벌 원고 작성에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으며, 최종 원고는 필자가 내용을 검토하고 실무 경험을 더해 다듬은 것입니다. 이번 글은 책의 2장 「지속가능 설계와 에너지원」의 2.10~2.16절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조민구 ·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