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 산책 10편] 첫 번째 패시브하우스, 크라니히슈타인 — 재어서 남긴 기록
지난 편까지 기준과 인증, 비용을 다루었습니다. 그 숫자들이 모두 한 채의 집에서 출발했습니다. 1991년 독일 다름슈타트의 크라니히슈타인에 지어진 네 세대짜리 연립주택입니다. 패시피디아의 이 항목…
지난 편까지 기준과 인증, 비용을 다루었습니다. 그 숫자들이 모두 한 채의 집에서 출발했습니다. 1991년 독일 다름슈타트의 크라니히슈타인에 지어진 네 세대짜리 연립주택입니다.
패시피디아의 이 항목은 그 집을 제안하고 지은 볼프강 파이스트 교수가 직접 쓴 글입니다. 어떻게 구상했고, 무엇으로 지었고, 살아 보니 어떠했는지가 측정값과 함께 적혀 있습니다. 패시브하우스가 주장이 아니라 기록으로 증명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글이라 조금 길게 옮깁니다.
1. 저에너지주택에서 한 걸음 더
1980년대 중반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는 저에너지건물이 이미 신축의 법정 기준이었습니다. 뛰어난 단열, 열교의 방지, 기밀, 단열 유리, 계획 환기가 그 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더 밀고 나가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패시브하우스가 나왔습니다.
1988년 5월, 스웨덴 룬드 대학에 머물던 파이스트가 건축구조를 전공한 보 아담손 교수와 함께 '패시브하우스'를 제안했습니다. 정의는 이렇습니다. 중부유럽의 기후에서도 난방 에너지요구량이 극히 작아 능동적인 난방이 필요 없는 건물입니다. 집 안에 이미 있는 열과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그리고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조금 데우는 것만으로 따뜻하게 유지됩니다.
그런 집이 가능하다는 이론적 증명은 파이스트의 학위논문 「중부유럽의 패시브하우스」(1993)에 담겼습니다. 건물의 에너지 수지를 컴퓨터로 모사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좌우하는 부위의 특성을 하나하나 바꾸어 효율과 비용, 거주 품질이 가장 좋아지는 조합을 찾았습니다. 남쪽 창의 크기와 유리의 품질을 바꿔 본 계산이 그 예입니다. 로이 코팅을 한 3중 유리가 있어야 수지가 맞는다는 결론이 여기서 나왔고, 당시에는 구하기 어려웠던 그 유리를 한 유리 회사의 도움으로 첫 집에 쓸 수 있었습니다.
난방만 줄여서는 안 됩니다
구상 단계에서 일찍 정리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난방 에너지만 줄이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가정에서 쓰는 모든 에너지를 줄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속임수가 가능합니다. 효율이 나쁜 가전을 들여놓아 실내 발열을 키우면 난방 에너지요구량은 '0'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실내 발열이 실제로 얼마인지는 당시에도 논란이었는데, 완공된 집에서 정밀하게 잰 결과는 약 2 W/㎡였습니다. 원문은 그런데도 표준 계산에서는 5 W/㎡가 넘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값이 여전히 쓰인다고 지적합니다.
2. 준비 연구와 건축
첫 집을 짓기에 앞서 헤센주 경제기술부의 지원으로 연구 그룹이 꾸려졌습니다. 여덟 개의 연구 과제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가 곧바로 설계에 들어갔습니다.
ㆍ여러 대안 설계안의 작성
ㆍ환기장치 열회수 효율의 개선
ㆍ공기질 지침에 근거한 환기 기준
ㆍ단열을 강화한 새 창틀과 덧문의 개발
ㆍ부위가 만나는 접합부의 상세
ㆍ태양열 이용 기술과 배수 열회수의 구상
다름슈타트시는 일찍부터 관심을 보여 시의 실험주택 사업 안에 이 계획을 받아들였습니다. 개인 건축주 넷이 조합을 꾸려 네 세대가 나란히 붙은 연립주택의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한 세대의 바닥면적은 156㎡입니다.
목표로 한 아주 작은 난방부하는 여러 수단을 모두 합쳐야만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재들을 하나하나 따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일반 건축보다 더 든 비용의 절반을 헤센주 환경부가 보조했습니다. 1991년에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목표에 이르렀는지를 확인할 정밀 측정 장치가 함께 설치되었고, 그해 10월에 완공되어 네 가족이 입주했습니다.
3. 무엇으로 지었는가
무게중심은 열을 지키는 데 있었습니다. 단열과 열회수입니다. 원문은 이 점이 그 뒤에 지어진 패시브하우스에서도 그대로라고 적습니다.
ㆍ지붕 : 열관류율 0.10 W/(㎡·K) — 잔디를 얹은 지붕. 목재 I형 보 사이의 445mm 공간 전체에 미네랄울 단열재를 불어 넣었습니다
ㆍ외벽 : 0.14 W/(㎡·K) — 175mm 규회 벽돌 조적 바깥에 발포 폴리스티렌(EPS) 275mm를 두 겹으로 붙이고 미장으로 마감했습니다
ㆍ지하층 천장 : 0.13 W/(㎡·K) — 160mm 콘크리트 슬래브 아래에 폴리스티렌 단열판 250mm
ㆍ창 : 0.7 W/(㎡·K) — 크립톤 가스를 채운 로이 3중 유리, 폴리우레탄 폼으로 단열한 목재 창틀. 창틀은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ㆍ환기 : 대향류 공기 대 공기 열교환기, 열회수율 약 80%
단열과 열회수 말고 두 가지가 더 쓰였습니다. 급탕을 위한 태양열 집열기와, 들어오는 외기를 미리 데우는 지중 열교환기입니다. 집열기는 세대당 5.3㎡이고 급탕에 드는 에너지의 약 66%를 맡았습니다. 나머지 열은 천연가스로 보탰습니다.
원문이 따로 짚는 것이 급탕입니다. 이 집에서 가장 큰 에너지 수요는 난방이 아니라 급탕이었습니다. 그래서 급탕 배관과 순환 배관을 단열된 외피 안쪽에 두고 따로 단열했습니다. 3편과 5편에서 급탕 배관의 손실이 거듭 문제가 되었던 것을 떠올리시면, 첫 집에서 이미 같은 결론에 이르러 있었던 셈입니다.
4. 환기장치가 없으면 성립하지 않습니다
패시브하우스는 고효율 열회수 환기장치가 있어야만 성립합니다. 까닭은 숫자 하나로 설명됩니다. 열을 회수하지 않을 때 환기로 잃는 열이 한 해에 바닥면적 1㎡당 35 kWh입니다. 패시브하우스 난방 에너지요구량의 두 배가 넘습니다. 준비 연구 단계에서 이미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런 장치가 시장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환기 팬은 전기를 너무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 전자 정류식 직류 모터를 쓴 팬을 이 집에 처음으로 적용했습니다. 지금 EC 모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공기가 흐르는 길의 형상을 다듬은 뒤에 운전 중 열회수율은 80%를 넘는 것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운전 방식은 단순합니다.
ㆍ가장 낮은 단계에서 세대마다 시간당 100㎥의 신선한 공기를 거실과 침실에 공급합니다. 네 식구라면 한 사람에 시간당 25㎥입니다
ㆍ실제로 집에 몇 사람이 있는지와 상관없이 이 풍량으로 계속 운전합니다. 복잡한 제어를 실험해 보았으나 들인 노력만큼의 값어치가 없었다고 원문은 적습니다
ㆍ가장 높은 단계는 시간당 160~185㎥이고, 거주자가 손으로 단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수준의 환기장치를 여러 제조사가 양산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입니다. 원문은 지금의 장치가 열회수율 80% 이상, 공기 1㎥를 옮기는 데 드는 전력 0.4 Wh 미만이라고 적습니다. 첫 집의 환기장치는 13년에서 15년 동안 고장 없이 작동했고, 정기 보수 때 같은 제조사의 새 제품으로 교체되었습니다.
5. 측정이 말한 것
이 집이 남긴 가장 큰 것은 측정 기록입니다.
난방
ㆍ첫 해(1991/92) : 19.8 kWh/(㎡·년) — 비교할 만한 일반 주택의 8%
ㆍ둘째 해(1992/93) : 11.8 kWh/(㎡·년) — 5.5%
ㆍ그 뒤 : 평균 10 kWh/(㎡·년) 미만
이 값이 얼마나 믿기 어려웠는지를 보여 주는 일이 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러 해 동안 32 kWh/(㎡·년)라는 숫자가 이 집의 난방 소비량으로 잘못 알려졌습니다. 그 숫자는 가전의 전기, 지하층의 전기, 취사와 급탕의 가스까지 모두 합친 총 에너지 소비량이었습니다. 당시의 수준으로는 32 kWh/(㎡·년)를 난방 소비량으로 읽는 편이 더 그럴듯해 보였던 것입니다.
혹독하게 추웠던 1996/97년 겨울에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설계에 쓰는 기준 외기온을 크게 벗어난 추위였고 일반 주택에서는 쾌적에 문제가 생겼지만, 이 집의 난방 소비는 11 kWh/(㎡·년)을 넘지 않았고 네 세대가 고르게 따뜻했습니다. 그 겨울에 잰 난방 출력은 한 번도 7.4 W/㎡를 넘지 않았습니다.
첫 집에서는 라디에이터를 빼지 못했습니다
원문이 솔직하게 적은 대목입니다. 첫 집에서는 라디에이터를 뺄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집과 그 뒤의 집들에서 한겨울의 최대 난방부하가 10 W/㎡에 못 미친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정도라면 남은 난방을 환기장치가 공급하는 공기로 감당할 수 있고, 열을 나르는 별도의 배관 계통이 필요 없습니다. 1편에서 본 '부하 10 W/㎡'라는 기준이 실제로 지은 집에서 확인된 것입니다.
이 결과는 모사 계산과는 맞았지만 당시의 표준 난방부하 계산법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산법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했고, 그 결과물이 지금의 PHPP입니다. PHPP로 이 집을 다시 계산한 난방 에너지요구량은 10.5 kWh/(㎡·년)으로, 실제로 잰 평균과 거의 같습니다. 같은 집을 2002년의 독일 법정 기준에 간신히 맞게 지었다면 58 kWh/(㎡·년)이 나옵니다.
전기와 기밀
가전에 쓰는 전기는 당시 평균의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효율이 좋은 기기를 쓴 것만으로 얻은 결과이고, 그 절감은 해가 지나도 유지되었습니다.
단열과 기밀이 뛰어난 미닫이 덧문을 단 한 세대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난방을 전혀 하지 않고 지내는 실험에 쓰이기도 했습니다.
기밀은 10년 뒤인 2001년 10월에 다시 쟀는데, n50이 여전히 0.3회/h에 못 미쳤습니다. 열화상으로도 부위에 열교가 없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스무 해, 그리고 그 뒤
원문은 2010년의 상태를 이렇게 적습니다. 같은 네 가족이 여전히 살고 있고, 실제로 잰 난방 에너지요구량은 10 kWh/(㎡·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큰 보수는 한 적이 없고 외벽과 지붕, 창은 처음 그대로입니다.
그 뒤의 기록도 있습니다. 지은 지 25년이 된 2016년에 기밀을 다시 쟀습니다. 여닫는 창과 문의 개스킷이 공기가 새는 원인으로 지목되어 교체했고, 교체 전후를 측정해 나아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25년이 넘는 측정을 정리한 연구는 에너지 소비가 설계한 대로 낮았으며 그 기간 내내 안정적이었다고 결론짓습니다. 이 연구는 패시브하우스가 에너지를 적게 쓸 뿐 아니라 오래가고 유지관리가 적게 드는 집이라고 정리합니다.
6. 실험에서 해답으로
1995년에 미국의 에너지 효율 연구자 에이머리 로빈스가 이 집을 찾았습니다. 그는 이 집이 과학 실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답이라고 말했고, 남은 일은 추가 비용이 줄도록 상세를 다시 설계하는 것뿐이며 그것은 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원문은 이 말이 패시브하우스를 실험에서 실무로 옮기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적습니다.
실제로 일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1996년에 '비용 효율적인 패시브하우스를 위한 연구 그룹'이 만들어졌고, 설계를 단순하게 해 줄 도구인 PHPP가 나왔으며, 2세대 시범 단지가 지어지고 적합 자재의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비용은 이렇게 움직였습니다. 첫 집에서 세대당 5만 유로가 넘던 추가 비용은 원문이 쓰인 시점에 6천에서 1만 5천 유로로, 7분의 1 수준이 되었습니다. 공동주택은 그보다 적고 단독주택은 더 듭니다. 독일에서 완공된 패시브하우스는 1999년 말에 약 300세대, 2000년 말에 1,000세대, 2006년에는 6,000~7,000세대로 늘었습니다.
지어진 건물의 종류도 넓어졌습니다. 단독주택과 연립주택, 다층 공동주택으로 지어졌고, 사무소와 학교, 유치원, 공장까지 나왔습니다. 원문은 이렇게 건물의 종류가 넓어지면서 패시브하우스가 특별한 공법이 아니라 건물의 기준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적습니다.
거주자의 반응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춥다고 느낀 적이 없다, 다시 짓는다면 틀림없이 패시브하우스로 짓겠다는 말들입니다. 단열이 좋으면 바깥이 얼어붙는 날에도 실내 표면이 어디나 따뜻하고, 그래서 외풍과 복사온도의 차이가 생기지 않습니다. 원문은 여기서 한 가지를 강조합니다. 효율이 높아질수록 쾌적도 함께 높아지므로, 에너지를 아끼는 일이 더는 참고 견디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7. 우리 상황에서 달리 읽어야 할 대목
35년 전의 값이 지금의 기준입니다
지붕 0.10, 외벽 0.14, 창 0.7 W/(㎡·K), 열회수율 80%. 1991년에 지은 집의 값입니다. 지금 패시브하우스를 설계할 때 목표로 삼는 수준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준이 처음부터 물리적인 근거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그 뒤로 옮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 자재들을 손으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재어야 압니다
이 집에 힘을 실어 준 것은 설계가 아니라 측정입니다. 첫 해의 19.8이 둘째 해에 11.8로 내려간 것도, 32라는 숫자가 잘못 읽힌 것을 바로잡은 것도 재어 둔 기록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지은 뒤에 기밀을 재고, 살면서 에너지를 재는 일이 패시브하우스를 주장에서 사실로 바꿉니다.
여름의 기록이 없습니다
이 글에 실린 측정은 거의 모두 난방에 관한 것입니다. 중부유럽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후에서는 같은 무게로 여름을 재어야 합니다. 실내 온도와 습도, 냉방에 든 에너지가 겨울의 난방 기록 옆에 놓여야 그 집이 우리 기후에서 어떠한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실내 발열은 여름에 반대로 작용합니다
원문이 실내 발열을 낙관적으로 잡지 말라고 한 것은 난방 계산을 두고 한 말입니다. 실내 발열을 실제보다 크게 잡으면 난방이 덜 드는 것처럼 계산됩니다.
우리 여름에는 같은 숫자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실내에서 나는 열은 그대로 냉방이 덜어 내야 할 부하가 됩니다. 효율이 좋은 가전은 전기를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냉방 부하까지 함께 줄입니다. 가정의 모든 에너지를 줄여야 한다는 첫 집의 원칙은, 냉방이 필요한 기후에서 한 번 더 값어치를 합니다.
참고한 자료
이 글은 패시피디아(Passipedia)의 다음 항목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ㆍThe world's first Passive House, Darmstadt-Kranichstein, Germany
(Wolfgang Feist)
5절 끝의 2016년 기밀 재측정과 25년 측정의 결론은 다음 자료로 확인했습니다.
ㆍLong-time durability of passive house building airtightness (AIVC)
ㆍDurability of building fabric components and ventilation systems in
passive houses (Energy Efficiency, 2019)
6절의 비용과 세대 수는 원문이 쓰인 2000년대 중반 독일의 값입니다. 원문 : https://passipedia.org
이 글이 만들어진 과정
이 연재는 독일 패시브하우스연구소가 운영하는 기술 자료집 패시피디아를 교재로 삼습니다. 항목을 순서대로 짚어가며 다룰 주제를 나누고, 각 주제가 우리 기후와 국내 기준에서 어떻게 달리 읽혀야 하는지를 함께 정리합니다.
원문을 요약하고 얼개를 잡는 초벌 작업에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만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도록 문장은 새로 쓰게 하였고, 마지막으로 제가 내용을 확인하고 다듬은 뒤 올립니다. 국내 기준과 수치는 따로 확인하여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