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패시브 칼럼 38편] 잘 보이는 빛 — 조도·휘도비·눈부심(글레어)의 과학
조명 계획에서 가장 먼저 정하는 숫자는 보통 조도입니다. 그러나 조도 숫자를 키운다고 늘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잘 보이는지는 보는 대상의 조건, 빛 환경, 보는 사람의 눈 상태가…
조명 계획에서 가장 먼저 정하는 숫자는 보통 조도입니다. 그러나 조도 숫자를 키운다고 늘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잘 보이는지는 보는 대상의 조건, 빛 환경, 보는 사람의 눈 상태가 함께 정합니다. 이 가운데 설계로 다룰 수 있는 몫은 빛 환경이고, 그 안에서도 빛의 양보다 면과 면 사이의 밝기 차이와 눈부심이 빛의 질을 좌우합니다. 이번 글은 교재 12.7~12.13절을 따라 그 기준을 정리합니다.
전등을 더 밝게 켜면 글씨가 더 잘 보일까요?
가장 값싸게 잘 보이게 하는 방법은 보는 대상을 키우거나 가까이 두는 것입니다. 교재는 칠판 글씨를 25% 키우면 조도를 100럭스에서 10,000럭스로 올린 것만큼 잘 보이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글씨를 조금 키우는 일이 조도를 백 배 올리는 일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짧게 스쳐 보는 대상도 마찬가지여서, 줄어든 보는 시간을 조도로 메우려면 아주 많은 빛이 듭니다.
크기와 거리 — 교재 그림 12.8a를 바탕으로 다시 그림
조도를 올릴 때 시각 성능은 처음에는 빠르게 좋아지다가 곧 무뎌집니다. 크고 대비가 높은 일은 100럭스 정도면 충분하고, 500럭스에서 1,000럭스로 두 배를 올려도 성능은 4% 남짓 늘어납니다. 1,000럭스를 넘기면 얻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작고 대비가 낮은 일은 조도의 도움을 크게 받지만, 빛을 아무리 더해도 크고 대비가 높은 일만큼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교재는 조도보다 대상의 크기와 대비를 먼저 손보라고 합니다.
조도와 시각 성능 — 교재 그림 12.8b를 바탕으로 다시 그림
대비는 글씨와 바로 뒤 바탕의 밝기 차이입니다. 흰 종이에 검은 잉크처럼 대비가 높으면 적은 빛으로도 잘 보이고, 대비가 낮으면 같은 만큼 보려고 조도를 아주 많이 올려야 합니다. 이 원리를 끝까지 쓰는 곳이 박물관입니다. 나무·종이·천·천연 안료는 빛을 받으면 바래므로 조도를 되도록 낮춥니다. 교재가 소개한 이집트 유물 전시는 유물에 40럭스도 안 되는 빛을 주면서 배경을 더 어둡게 두어 유물을 또렷하게 보이게 했습니다. 가장 해로운 것은 자외선이지만, 보이는 빛 가운데서도 보라·파랑이 빨강보다 더 바래게 합니다.
대비와 어두운 배경 — 교재 그림 12.8c·12.8d를 바탕으로 다시 그림
그렇다면 어디에 얼마나 비춰야 할까요. 교재 표 12.9의 대략값은 밤의 복도 30럭스, 작업이 없는 주거 공간과 식당 80럭스, 복도·로비 150럭스, 주거 부엌처럼 크거나 대비가 높은 일 300럭스, 사무실·교실처럼 작거나 대비가 중간인 일 750럭스, 설계실처럼 아주 작고 대비가 낮은 일 1,500럭스입니다. 나이 차이도 큽니다. 20대의 시각 성능은 50대의 네 배, 60대의 여덟 배여서, 마감이 어둡거나 50세가 넘는 사람이 많으면 약 50% 올리고, 마감이 아주 밝고 40세 아래가 대부분이면 약 50% 내립니다. 공간 전체를 작업면 기준으로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작업면이 750럭스라면 주변 전체는 그 3분의 1인 250럭스, 통로는 다시 3분의 1인 80럭스면 됩니다.
조도 권장값 — 교재 표 12.9를 바탕으로 다시 그림
왜 조명이 밝은 실내에서도 눈이 쉽게 피로해질까요?
눈은 한 시야 안의 서로 다른 두 밝기에 한꺼번에 맞추지 못합니다. 밝은 낮에 카메라 노출을 실내에 맞추면 바깥 풍경이 하얗게 날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시선을 옮길 때마다 눈이 다시 맞추느라 지치므로, 교재 표 12.10은 시야 안의 밝기 비(휘도비) 상한을 둡니다. 책과 책상은 3:1, 책과 가까운 칸막이는 5:1, 책과 먼 벽은 10:1, 창과 바로 옆 벽은 20:1입니다. 시선 중심에 가까울수록 엄하게, 가장자리는 너그럽게 보는 셈입니다. 다만 완전히 고른 밝기도 좋지 않아서, 작업면은 바로 옆보다 조금 밝은 편이 낫습니다.
밝기 비를 맞추는 첫 단계는 넓은 면의 반사율을 고르는 일입니다. 교재가 사무 공간에 권하는 최소값은 천장 80%, 벽 60%, 바닥 40%입니다. 어두운 벽은 특히 피합니다. 작은 목재 판 하나는 보기 좋아도 벽 한 면 전체를 어두운 목재로 덮으면 답답해집니다. 목조주택에서 목재 마감을 넓게 드러낼 때 따져 볼 대목입니다. 그다음 벽처럼 세운 면에 빛을 더해 밝기 비를 맞춥니다. 책상만 밝고 벽이 어두우면 방 전체가 어두워 보입니다.
밝기 비와 마감 반사율 — 교재 표 12.10·그림 12.11k를 바탕으로 다시 그림
책면이나 모니터에 비치는 반사광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눈부심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직접 눈부심은 눈높이에서 위로 45° 안쪽에 밝은 등이 보일 때 생깁니다. 등의 빛이 퍼지는 범위(수평 아래 45°)와 사람이 눈부심을 느끼는 범위(수평 위 45°)가 맞물리는 자리입니다. 루버나 격자로 등을 가려 빛이 45°보다 가파르게 아래로만 나오게 하면 줄어듭니다. 같은 등도 검은 천장보다 흰 천장 앞에서 덜 눈부시고, 천장을 비추는 간접 조명은 눈부심이 거의 없습니다.
직접 눈부심 — 교재 그림 12.11a·12.11c를 바탕으로 다시 그림
더 까다로운 것은 광막 반사입니다. 광택 있는 종이나 화면에 등이 비쳐 글씨 위에 빛의 막이 덮이는 현상으로, 교재는 조명 설계자가 마주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습니다. 읽고 쓰는 시선은 수직에서 25~40° 기울어 있고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으므로, 이 시선을 거울처럼 뒤집은 천장 영역이 문제 영역이 됩니다. 연필 자국이나 광택 잉크는 반사광 속에서 흰 바탕과 같은 밝기가 되어 대비가 사라집니다. 문제 영역을 찾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종이 자리에 거울을 놓았을 때 거울에 보이는 등이 바로 광막 반사를 만드는 등입니다.
광막 반사와 문제 영역 — 교재 그림 12.11e·12.11f·12.11g를 바탕으로 다시 그림
그래서 책상의 빛은 옆에서 들어와야 합니다. 앞쪽 등은 반사를 만들고 뒤쪽 등은 손과 몸의 그림자를 만들며, 양옆의 등은 둘 다 피합니다. 교재는 ESI(등가 구면 조도)라는 지표로 이 차이를 보여 줍니다. 조도계로 2,500럭스가 나오는 조명도 반사 때문에 ESI가 500럭스에 그치면 2,000럭스는 쓸모가 없습니다. 반대로 반사를 거의 없애면 권장 조도를 약 25% 낮춰도 됩니다. 모니터처럼 세운 화면은 문제 영역이 사람 뒤쪽에 생기므로 등 뒤의 밝은 창과 등을 피하고, 주변은 약 100럭스로 낮게 둔 채 서류를 볼 작업등을 더합니다.
빛은 옆에서 — 교재 그림 12.11i·12.11j·12.13a를 바탕으로 다시 그림
형태와 질감, 그림과 창은 어떻게 비춰야 할까요?
빛의 방향은 형태와 질감도 정합니다. 한 방향 빛만 있으면 짙은 그림자가 형태를 가리고, 확산 빛만 있으면 납작하게 보입니다. 방향 빛에 약간의 확산 빛이 섞일 때 입체감이 가장 잘 드러납니다. 방향 빛은 위쪽 한 옆에서 오는 편이 눈에 익고, 아래에서 비춘 얼굴은 낯설게 보입니다. 면을 스치는 빛은 결을 살리지만 표면의 흠도 함께 드러내므로, 목재 결처럼 보여 줄 면과 흠을 감출 면을 나눠 빛의 방향을 정합니다.
입체감과 질감 — 교재 그림 12.13b~12.13f를 바탕으로 다시 그림
벽에 건 액자는 유리에 비친 등이 보는 사람 눈에 들지 않아야 합니다. 등을 문제 영역보다 벽 쪽에 두되, 벽에 너무 붙이면 액자 윗변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화면의 결이 지나치게 드러납니다. 교재는 대부분 60° 겨냥 각도가 무난한 절충이라고 하고, 반사 방지 유리를 쓰면 각도 제약이 훨씬 줄어듭니다.
그림을 비추는 각도 — 교재 그림 12.13h·12.13i를 바탕으로 다시 그림
밤의 창도 조명의 일부입니다. 유리는 빛을 약 90% 통과시키고 약 10% 반사하므로 바깥 상과 비친 상이 늘 함께 보입니다. 낮에는 바깥 상이 반사 상을 덮지만, 밤에는 창이 검은 거울이 되어 실내를 비춥니다. 교재는 많은 사람이 이 검은 구멍 효과를 불편해한다고 적습니다. 창에 닿은 빛의 약 90%가 밖으로 빠지므로 큰 창은 밤의 조명 효율도 떨어뜨립니다. 커튼이나 블라인드 같은 움직이는 가림은 낮에는 차양, 밤에는 반사판 구실을 합니다. 남쪽에 큰 창을 두는 패시브하우스라면 외부 차양과 함께 실내 가림도 처음부터 계획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밤의 창 — 교재 12.13절을 바탕으로 다시 그림
조도는 출발점이고, 잘 보이는 빛은 대상의 크기와 대비, 밝기 비, 빛의 방향과 각도에서 나옵니다. 마감 반사율과 등의 자리를 도면 단계에서 정해 두면 같은 전력으로 더 잘 보이는 방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가 말하는 '데이터로 증명하는 건축가의 책임'은 조명 계획에서도 이런 숫자로 확인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컴퓨터나 책을 볼 때 눈부심을 줄이려면 조명을 어디에 설치해야 하나요?
조명을 머리 바로 위나 정면에 두지 말고 몸의 양옆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앞쪽 천장은 종이나 화면에 등이 비치는 광막 반사의 문제 영역이고, 뒤쪽 등은 손과 몸의 그림자를 만듭니다. 종이 자리에 거울을 놓아 보면 반사를 만드는 등을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모니터는 문제 영역이 사람 뒤쪽에 생기므로 등 뒤의 밝은 창과 등을 피하고, 주변 조명은 약 100럭스로 낮게 두고 서류용 작업등을 더합니다.
실내 조도와 휘도비는 주택 설계에서 어떤 차이가 있나요?
조도는 면에 닿는 빛의 양이고, 휘도비(밝기 비)는 시야 안에 있는 면들의 밝기 차이입니다. 조도가 충분해도 밝기 차이가 크면 시선을 옮길 때마다 눈이 다시 맞추느라 지칩니다. 교재가 권하는 상한은 책과 책상 3:1, 책과 가까운 칸막이 5:1, 책과 먼 벽 10:1, 창과 바로 옆 벽 20:1이며, 이를 맞추려면 천장 80%, 벽 60%, 바닥 40% 이상의 반사율로 넓은 면부터 고릅니다.
이 글이 만들어진 과정
이 연재는 Norbert Lechner의 『Heating, Cooling, Lighting』을 교재로 삼습니다. 책의 챕터 순서에 따라 다룰 주제를 나누고, 각 주제를 패시브하우스의 설계·시공과 연결해 글의 얼개를 구성합니다. 그 얼개를 바탕으로 한 초벌 원고 작성에는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으며, 최종 원고는 필자가 내용을 검토하고 실무 경험을 더해 다듬은 것입니다. 이번 글은 책의 12장 「빛과 조명의 기초」의 12.7~12.13절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조민구 · 해가패시브건축사사무소